2010년 2월 1일 월요일

낸시랭은 예술가인가?



내가 보기에 낸시랭은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윤리적 판단'에 근거한 '예술가'이다. 낸시랭은 욕망의 수용과 거부라는 측면에 자신의 작업을 고정시키고 있기에 '순수 미학'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낸시랭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런 반발은 그의 예술이 도발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감각적 판단이나 윤리적 판단과 다른 제 3의 판단이 작동하는 '미학의 차원,' 랑시에르의 용어법에 따르자면, 기존의 미학체제를 뒤흔드는 정치적인 것이 낸시랭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팝아트는 겉으로 보기에 미학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새로운 미학의 체제를 만들어낸 운동이었다. 낸시랭은 이 미학의 체제 내에서 이미 받아들여진 기성의 감각을 되풀이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낸시랭이라는 존재에서 의미를 찾겠다면, 예술가로 그를 규정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한국 사회의 규범이 만들어낸 '오브제'로서 그를 평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낸시랭이라는 존재 자체가 다른 예술가의 작업을 위한 오브제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낸시랭은 신정아 해프닝의 경우처럼, 한국의 미술계,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도사린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상 같은 것이다. 자생성이 없는 근대화의 후과는 이렇게 학계와 예술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놓았고, 낸시랭은 그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낸시랭은 그 이름만큼이나, 장구한(lang) 내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택광 선생의 글
낸시랭은 예술가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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